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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좋은 일자리는 없다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16-06-15 09:18:31 | 조회수 : 2267
‘일할 수 있는 노인’이라면 그래도 나은 것일까? 대답하기 어려운 과제다. 노인 지하철택배는 임금이 가장 낮은 업종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시급 2천원 인생’을 산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3월31일(목) 17일째

오전 10시20분, 연신내역에서 충무로역 가는 코스다. ○○은행 건물 6층 사무실에 들어가니 서류봉투와 7천원을 준다. 도착지의 은행 여직원은 고객과 상담하고 있다. 나를 보더니 잠시 위치를 바꿔서 물건을 받았다. 배송 의뢰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배송을 마쳤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은행에서 대기했다. 책을 보기엔 지하철보다 조명이 밝다. 간단히 요기도 했다. 다음은 1시20분에 무악재역에서 오금역까지 9천원이다. “무악재역에 ○○아파트 경비실에서 물건을 찾아 오금역으로 가라”고 사장이 말한다.

“왜 전화도 없이 퇴근합니까?”

아파트는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입구엔 차단기가 있고, 길 건너로 정문 경비실이 보인다. 물건을 찾아 나왔다. 가는 중에 전화가 왔다. 장지역에서 신림동 서울대로 가는 코스가 추가됐다. 요금은 버스비 포함 9천원. 사장은 “오금으로 가면서 아예 장지 물건까지 받아서 이동하라”고 한다. 경쟁업체에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일단 물건부터 잡아두려는 것이다.

장지에 들르지 않고, 오금으로 갔다. 장지에서 주는 물건의 부피가 클 경우 오금 물건까지 더해져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배송지에 전화했더니 “오금역 7번 출구로 나오겠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오니 시간이 단축됐다. 오금역에서 물건과 영수증을 건넸다. 배송할 물건을 가진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십니까?”

“가락시장인데요.”

“곧 오시겠네요. 장지에 내리시면 전화를 주세요. 1층으로 가지고 내려가겠습니다. 물건이 5시까지는 서울대에 가야 하거든요.”

시간상으론 가능할 것 같다. 물건은 큰 상자다. 오금에 가져간 스티로폼 상자만큼이나 크다. 이곳을 먼저 들렀으면 큰 물건 두 개를 가지고 낑낑댔겠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동을 찾는다. 건물이 많아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곳 학생들도 학교 안에 모르는 건물이 있다. 물건을 건네주고 배송을 의뢰한 곳에 문자를 보냈다. ‘배송을 마쳤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이번엔 답장이 왔다. ‘네, 수고하셨어요.’

2만4천원(9시간30분 근무)-7200원(회사 수수료 30%)=하루 수입 1만6800원(시간당 1770원)

4월1일(금) 18일째- 미세먼지 나쁨

오전 11시에 경기도 수원으로 가서 물건을 받으라고 한다. 신길역으로 이동해 1호선을 타야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 된대요. 취소예요. 지금 어디 계세요?”

“신길입니다.”

“그럼 신도림에 가 계세요.”

신도림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개찰구가 나온다. 그 옆으로 넓은 공간이 보인다. 복잡한 대합실보다 여기서 대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도구가 있고, 한 남자가 서 있다. 청소를 하는 남자인가…. 말을 건넸다.

“지하철택배를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철길이 다 보이네요.”

“나도 택배를 하는데요. 6개월 되었는데 사장이 좋은 분이라, 하루에 두세 번만 해도 3만원은 돼요.”

대화를 나누는데 전화가 왔다. 신월역에서 광화문 코스란다. 배송지에 전화를 했다.

“위치를 문자로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지도와 찾아가는 방법이 왔다. ‘예상 도착 시간은 약 40분 내외입니다.’ ‘건물이 한쪽은 사무실이고, 한쪽은 아파트입니다. 사무실 쪽으로 가지 마시고 아파트로 올라오세요.’ ‘네.’

문자로 소통한다. 말로도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자나 그림만으로 소통되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폰에서 지도를 보며 주변을 돌아봤다. 목표물이 보인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란 책 제목을 생각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대기다. 광화문 골목길에 더 있고 싶었다. 햇볕도 좋고,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의 지시대로 대기한다. <긍정의 심리학>을 거의 다 읽어간다. 일을 마친 뒤 몸이 피곤해 집에서는 독서가 안 된다. 오후 4시50분 사무실에 문자를 보냈다. ‘퇴근하겠습니다.’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도림인데요.”

“왜 전화도 없이 신도림으로 왔습니까?”

“퇴근한다고 문자를 보냈는데요.”

“내가 바쁜데 문자를 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앞으론 문자 하지 마세요. 왜 신도림으로 왔습니까?”

갑을관계는 명령식 대화에 익숙해야 하나보다.

“발목이 아파서 퇴근하려고요.”

2만3천원(8시간 근무)-6900원(회사 수수료)

=수입 1만6100원(시간당 2000원)

전화가 왔다, 또 전화가 왔다

4월4일(월) 19일째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주민센터 앞 건물에서 큰 상자를 받아 경기도 시흥 정왕역 배송지 쪽으로 전화했다.

“택배인데요. 가는 위치를 알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주소 가지면 찾아오실 수 있지 않나요?”

젊은 남자 목소리인데 무뚝뚝하다. 찾아갈 수 있겠지만, 시간을 단축하고 싶어서 전화했다. 검색해보니 버스에서 내려 20분을 걸어야 한다. 문자를 보냈다. ‘버스에서 내려 20분을 걷는다고 나오는데 맞나요?’

전화가 왔다.

“저희는 전철 타고 다니질 않아서 몰라요. 찾아오세요.”

다시 전화가 왔다.

“몇 분이나 걸리나요.” “한 30분 걸릴 겁니다.” “빨리 오세요. 물건이 안 와서 일을 못하고 있어요.”

또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예요?” “봉우제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요.” “봉우제 버스 정류장은 몰라요. 그냥 오세요.”

다시 전화.

“○○마을이라고 쓴 돌비석 보입니까?”

“안 보이는데요.”

“시흥시청과 정왕역이란 표지판이 보이고 고속도로 밑으로 굴다리가 보여요. 거기 계세요.”

금방 올 것 같은 사람이 안 온다.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았다. 허허벌판에 나 혼자 기다린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다면 삶의 절반을 배운 것이란 말이 있지만, 허허벌판에서의 기다림은 외롭다. 기다림에 지쳐갈 때 중형승용차가 와서 상자를 건넸다. 3만원.

2만5천원(9시간)-7500원(회사 수수료)

=수입 1만7500원(시간당 1940원)

※추가 수입: 교통비 5천원-2500원=2500원

4월6일(수) 21일째

동평화시장에서 양천향교역으로 간다. 의뢰한 곳은 여성 내복을 파는 업체다. 배송 물품의 부피가 커서 가방에 간신히 집어넣었다. 노량진에서 9호선 급행을 탔다. 경로석은 자리가 없다. 경로석에 자리가 없으면 일반석으로 가지 않는다. 젊은이들도 피곤하다.

경로석 맞은편은 장애인휠체어석이라 비어 있다. 유모차에 탄 아기가 칭얼거린다. 손가락 두 개를 아기 눈앞에서 움직여주었더니 반응한다. 내가 웃으니 아기도 웃었다. 7개월 아기와 70살 넘은 할아버지가 서로 즐겁다. 다음은 신림에서 종로3가다. 사장의 말이 빠르고 사투리가 남아 있어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잘 못 들었는데요, 천천히 다시 말씀해주세요.”

“더 이상 어떻게 천천히 말합니까?”

목소리가 크고, 말끝이 높고 짧다. 그렇게 통화하다가도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면 목소리가 나긋해진다.

3만1천원(12시간)-9300원(회사 수수료)

=수입 2만1700원(시간당 1810원)

※추가 수입: 교통비 2500원-1250원=1250원

기타 수입 500원

경력 10년, 월수입 60만원

4월8일(금) 23일째

아침 7시30분 집을 나왔다. 경기도 부천 상동에 있는 카센터에 자동차 백미러를 9시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이른 아침 지하철 안은 ‘콩나물시루’다.

“무슨 일로 오셨죠?”

“백미러 가지고 왔는데요. 상자를 뜯어 물건을 확인해보시지요.”

깨끗하게 수리된 백미러가 나왔다. 백미러를 포장할 땐 유리가 있는 쪽에 신문지 뭉치를 댄다. 그리고 에어캡 포장지로 똘똘 말아서 감싼다. 신문지, 에어캡 때문에 백미러는 작아도 상자는 크다. 백미러를 승용차에 대보더니 이상이 없다고 했다. 제품 확인을 하고 떠나야 한다.

배송을 의뢰한 쪽 사장이 “택배 아저씨가 물건을 배달했는데 나중에 백미러 유리가 깨졌다고 해서 배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신도림역 대기다. 어제 들렀던 ‘동네북카페’로 갔다. 택배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오늘은 문이 닫혀 있다. 오전 10시부터 문을 연다고 한다. 동네북카페는 ‘고리’라는 문화공간으로도 부른다. 작은 콘서트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다. 특별한 행사가 없을 때, 택배노인들에겐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이다. 건너편 2개의 벤치에 노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에게 갔다.

“택배 오래 하셨어요?”

말하지 않고 손가락 10개를 펴 보이신다. 경력 10년이란 뜻이다.

“월수입은 얼마나 되세요?”

“60만원. 난 토·일·공휴일은 다 쉬어요. 그 대신 저녁 늦게까지 해요. 장거리보다 시내 짧은 거리를 두 건 하는 게 수입이 나아요.”

“장거리가 더 편하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편하기는 해도 돈은 짧은 거리를 자주 하는 게 더 많아요.”

다음은 노량진에서 노원구다. 배송비가 9천원인데 1만원을 준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선 플래카드를 쳐놓았다. ‘단결’이란 문구도 보인다. 새 건물이 들어오면서 분쟁이 있다고 하더니 ‘투쟁 조끼’를 입었다. ○○해물을 찾아 스티로폼 상자를 받았다. 부피가 있어서 가지고 가기 쉽지 않다. 끈으로 묶어서 킥보드에 걸고 다닌다.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덜 무겁다.

노원역으로 가니 보험회사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었더니 경비원이 와서 묻는다.

“어디 가세요?”

“6층 가는데요.”

“택배인가요?”

“네, 아저씬 몇 시간 근무하세요?”

“24시간 근무로 맞교대예요.”

“직영인가요?”

“용역이에요.”

“예전엔 직영이었다고 하는데 IMF 이후 용역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연령 제한이 있습니까?”

“60살로 알고 있어요.”

사무실에 책상은 많은데 설계사는 대여섯 명뿐이다. “오시느라고 힘드셨겠다”며 녹차를 준다. 잠시 앉아 차를 마시며 설계사 아줌마와 얘기를 나눴다.

“보험을 오래 하셨나봐요.”

“한 30년 했어요.”

“와우! 연륜이 있으시네요.”

“오래 했지만 지금은 많이 못해요. 심심해서 나와 있는 거죠. 집에 있으면 뭐해요. 내 용돈이라도 벌어 쓰는 거죠.”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창동에서 강남, 8천원이다.

2만8천(11시간)-8400원(회사 수수료)

=수입 1만9600원(시간당 1780원)

※추가 수입: 수고비 3천원

노인택배 협동조합 어떨까

후기

이렇게 나의 노인 지하철택배 체험 한 달이 끝났다. ‘전국일하는노인연대’가 정한 ‘일하는 노인 권리 선언문’ 제1조(평등과 행복의 권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첫째, 우리 일하는 노인은 헌법의 정하는 바에 따라 법 앞에 평등하며 이 나라 어른으로서의 존중을 받고 일을 통한 행복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인 지하철택배는 내가 아는 노동 가운데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업종이다. 그 돈을 아껴 노인들은 생활비와 용돈으로 쓴다. 하루하루 고달픈 택배일을 10년 넘게 한 노인도 있다. 임금이 적지만 노는 것보다는 낫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노인들 처지에선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택배를 한다. “택배를 하면서 건강해졌다”고 말하는 노인도 봤다. “경로당만 다닐 때는 아픈 데가 많았지만 지금은 건강해져서 앞으로도 택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하철택배는 노인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언제든 쉴 수 있고, 출퇴근도 비교적 자유로워 시간 제약 없이 일한다는 장점도 있다.

사람살이란 게 그렇다. 배송을 오갈 때마다 “차 한잔 드시고 가라”고 말하는 이들, 잔돈을 받지 않는 ‘작지만 배려의 마음’들이 고맙다. 찾아오는 길을 잘 안내해주고, 말 한마디라도 살갑게 해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약도를 자세히 그려 문자로 보내주는 이들도 있다. 한명 한명이 모두 우리 사회를 ‘작은 공동체’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성의 없이 길을 알려주거나, 버스비를 주지 않기 위해서 걷는 거리가 꽤 되어도 말해주지 않는 이들이 그렇다.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도, 전철역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버스비는 별도란 걸 알면서도 주지 않으려 하거나, 실제 안 주는 사람도 있었다. 택배노인들은 업체 사장과 고객 사이에 낀 샌드위치 속 같은 신세다. 대형버스와 트럭 사이에 낀 경차 같기도 하다.

노인 지하철택배를 해보니, 이 업체를 협동조합처럼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회사가 떼는 수수료 30%를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복지관이나 자치단체들이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킥보드를 타고 다녀 다른 노인들보다 빨리 움직였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면 수입이 더 늘지는 몰라도 연약한 노인에겐 무리가 따른다. 노인 지하철택배를 하면서 받은 일당을 모두 적어두었다. 한 달 수입을 계산해봤다. 이렇게 하면 노동은 ‘숫자’로 환산된다. 큰 숫자가 있는 곳에 노인이 설 자리는 없다.

‘2천원 인생’으론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 청년도 그렇지만, 노인 일자리도 부족하다. 먹고사는 일에 목매지 않는 국가는 언제쯤이면 될까?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라면을 끓이며>(김훈) 가운데)


 

 

 

 

 

한  달  수입  내역

 

 

① 택배 배송료 총수입: 40만9천원/233시간

※ 시간당 1750원

② 교통비 수입: 4600원

③ 수고비: 2만1천원

④ 기타: 500원

⑤ 식사 4회: 1만4500원

⑥ 병원비·약값: 3만7800원

⑦ 총수입: 43만5100원(=①+②+③+④)

⑧ 총지출: 5만2300원(=⑤+⑥)

⑨ 총수지: 38만2800원/233시간(=⑦-⑧)

※ 시간당 1640원

 

 

 

 

 

백강 노인노동 체험 기록자